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76. 장례식은 명예를 과시하는 자리

다양한 장례문화가 남아있는 케냐에서도 루오족의 장례식은 단연 돋보인다. 루오족의 거창한 장례식은 같은 케냐인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다.

루오 사람들은 장례식을 화려하게 치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상객들은 장례식이 호화롭게 치러질수록 그만큼 죽은 이가 훌륭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상주는 큰돈을 들여 비싼 음식을 준비하고, 악단을 불러 음악을 연주하며 장례식을 커다란 축제로 만든다.종종 장례식을 좀 더 규모 있게 보이고 싶어 하는 상주들은 전문 울음꾼을 고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돈을 받고 울어주는 사람들이다.

울음꾼들은 죽은 이를 알든 오르든 간에 가슴이 녹아내리도록 애절하게 울며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처럼 구슬피 우는 사람이 있다면 하객들은 죽은 이가 분명 굉장히 자애롭고 사랑받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루오 사람들에게 장례식은 단순히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것을 넘어 가문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일을 했던 루오족 출신 케빈 오폰디 씨는 얼마 전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그는 부족의 지도자였던 조부의 명성에 걸맞은 훌륭한 장례식을 원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면 바로 장례를 치르는 한국과 달리 루오족은 2주에서 3주 후에 장례식을 거행한다. 예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하기에 그것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 기간을 두는 것이다.

케빈 씨는 가까운 가족들을 만나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의논했다. 장소와 시간을 결정하고 장례에 필요한 비용과 관, 묘지 등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모았다. 그리고 죽은 이의 친척과 친구, 지인들에게 장례식 소식을 전했다.

장례식 날까지 케빈 씨는 마치 지역 축제 준비 위원장이라도 된 것처럼 수없이 많은 전화를 받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준비 기간 이후 진짜 장례식은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케빈 씨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지도자였기에 무려 3,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와 대성황을 이루었다.

문상객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죽은 이가 생전에 대단한 인물이었을 거라 여기고, 가족들은 명예롭게 생각한다. 장례식장을 가득 채운 추모객들을 보며 케빈 씨가 흐뭇했음은 물론이다.

식장에 온 하객들은 먼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한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떠나간 이를 향한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슬픔에 잠겨있는 건 아니다. 한 시간가량 큰 소리로 울고 나면 문상객은 차츰 감정을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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