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74. 21세기 ‘변사’에 환호

케냐의 가난한 빈민촌 마다레에 있는 한 가정을 방문했다. 허름한 흙벽돌과 나뭇조각, 녹슨 양철판으로 지어진 다 무너가는 작은 집.

주인 아낙은 외국인이 찾아온 것을 웃음으로 반기며 부랴부랴 손님맞이를 했다. 그녀의 손님맞이란 TV를 켜는 것. 한국에선 요즘 구하기도 어려울 10인치짜리 볼품없는 브라운관 TV였다.

가난한 빈민촌 사람이라도 돈이 모이면 가장 먼저 TV부터 장만한다. 그만큼 아프리카인들에게 TV는 소중하다.

TV는 바깥세상에서 오는 신선한 문화와 볼거리를 갑갑한 슬럼으로 가져다주는 문화적 청량제 같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10인치짜리 작은 꼬마가 큰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TV의 활약을 가장 뜨겁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판자촌 극장이다. 극장이라고 하면 번쩍이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떠올리겠지만, 판자촌 극장은 사뭇 다르다.

녹슨 양철판으로 둘러친 벽, 나무판과 각목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불편하기 그지없는 계단식 좌석, 그리고 스크린 대신 덩그러니 놓여있는 TV, 애석하게도 30인치가 될락 말락 한 조그만 브라운관 TV가 놓여있다.

극장은 저녁이 되면 영화를 보려는 주민들로 북적인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오기도 하고 삼촌을 졸라 나온 꼬마 녀석들도 보인다. 물론 젊은 연인들도 빠지지 않는다.

입장료는 영화 한 편에 우리 돈 100원 정도. 종종 영국 축구 중계방송을 할 때는 경기하는 구단의 인기에 따라 200원에서 500원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컴컴한 실내의 삐걱거리는 나무 좌석이 사람들로 가득 차고 영화가 시작된다. 초라한 TV는 어느 고급 극장의 영사기도 해내지 못하는 힘을 뿜는다.

목을 길게 뽑은 관객들은 TV 화면에서 재생되는 영상에 몰입한다. 주로 중국이나 할리우드의 영화가 상영된다. 특히 성룡의 액션 영화는 특유의 재미로 인기가 높다.

재미있는 건 영화를 통역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통역이지 영화를 새로 만들다시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중국 영화는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엉터리 통역사는 자기 마음대로 줄거리를 주무른다.

전문 배우 뺨치는 뛰어난 연기력과 화술로 관객을 휘어잡는 덕에 영화의 본래 내용이야 어찌 되든 큰 문제가 안 된다.

뭔가를 TV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 배우의 동작 하나하나에 박수를 치고, ‘변사’의 과장된 괴성에 덩달아 환호하는 사람들은 마치 진짜 성룡과 이연걸이 눈앞에서 대결이라도 하는 듯 뜨겁게 달아오른다.

허름한 극장의 작은 TV는 소박한 행복을 사람들에게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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