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68. 백인 편에 붙은 근육질 '앞잡이'

19세기, 서구 열강들이 파견한 신식군대는 선조들에게 받은 땅과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해 일어난 아프리카 전사들을 학살했다.

벌판에 누워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쓰러진 전사들은 머리카락이 고불고불한 흑인들이었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땅에 엎어진 전사들의 피가 대지를 빨갛게 적셨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조상이었다. 다름 아닌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이었다.

아프리카 전사들을 학살한 백인들은 식민지 군대를 창설했다. 새로이 모집된 젊은 병사들은 과거에 부족과 공동체를 지키던 고고한 기품의 전사들과는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백인 편에 붙은 근육질 ‘앞잡이’일 뿐이었다.

군인들은 식민정부를 도와 자기 만족을 억압했다. 케냐, 탄자니아, 말라위 등이 속한 동아프리카 영국 식민지 부대의 이름은 ‘국왕의 아프리카소총부대(KAR, King’s African Riflees)였다.

그리고 나이지리아, 가나, 시에라리온 등이 포함된 서아프리카 영국 식민지 부대는 ‘국왕의 서아프리카 국경부대’(RWAFF, Royal West African Frontier Force)였다.

이미 명칭에서부터 식민지 국민들과 아프리카 민족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식민통치 기간 아프리카계 군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이 아닌 지배자 영국과 프랑스를 위해 싸웠다.

자기 동포들을 꼼짝 못 하게 틀어막았고, 크고 작은 분쟁 지역으로 제국주의를 지키려 뛰어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에 무려 135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싸웠다. 대전 후에는 각국에서 벌어지는 독립운동을 진압하며 자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 군인들은 제국의 ‘경비견’으로 활동했다.

그때부터였다. 케냐인들에게 군인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 존경 받던 위대한 전사들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비슷한 타락한 무리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제 군인은 더 이상 자랑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무력으로 민족을 억압하는 검은 피부에 하얀 가면을 쓴 이질적인 앞잡이였다.

사람들은 군인들을 향해 아프리카인들을 괴롭히는 타락한 녀석들이라며 저주했다. 그렇게 식민지배 때 시작된 원망과 분노는 세대를 이어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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