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67. 옛날 아프리카 군인

처음부터 케냐 사람들이 군인을 나쁘게 본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아프리카에는 부족과 공동체를 지키는 전사들이 있었다. 소년이라면 누구나 위대한 전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

전사가 되려면 혹독한 성인식을 거쳐야 했고, 통과하지 못한 자는 사내 대접 받기도 어려웠다.

전통사회에서 전사들은 만인의 존경을 받는, 자긍심 강한 집단이었다.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창과 방패를 들고 부족을 위해 싸우는 전사들. 전투는 그들에게 신성한 일이었고, 전장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전사의 영광이었다.

사람들은 위대한 전사를 기리는 노래를 불렀고, 영웅을 배출한 집안은 존경받았다.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의 결정체가 전사들이었다.

언젠가부터 그들은 하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천둥을 부르는 막대기를 갖고 있는 백인에게는 가장 용맹한 전사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법을 쓰는 백인들은 해안 지방에서부터 차츰 아프리카 전 지역을 장악해 갔다.

백인의 군대는 적은 숫자였지만 좀처럼 이기기 어려웠다. 백인들과의 싸움을 준비하며 전사들은 탄환이 자신을 피해가도록 마을의 주술사와 장로들에게 축복을 받았다.

하지만 매서운 총알은 전사들의 방패와 심장을 함께 꿰뚫었다.

19세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열강들이 파견한 신식 군대와 토착민들 간의 전투가 아프리카 전역에서 벌어졌다.

가나의 아산티, 짐바브웨의 은데벨레, 남아공의 졸루 등 아프리카에 터를 잡고 있던 여러 국가에서 왕과 전사들이 무기를 들었다.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땅을 지키기 위해,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해 일어섰다. 어쩌면 전사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백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의 무기, 기관총과 야포를 이길 수 없음을. 그럼에도 그들은 나서야만 했다.

100여 년 전 이 땅 위에 대치했던 두 부류의 군인들의 모습이 돌판 위에 그려졌다.

기관총과 야포로 무장한 소수의 백인들, 그리고 반대편에는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수많은 전사들, 전사들이 전투의 춤을 춘다. 노래를 하고 발을 구르며 조상들의 가호를 빈다. 그리고 함성을 지르며 용맹하게 진격한다.

귀를 찢는 총성이 그들의 목소리를 잠재웠고 강풍에 꽃이 떨어지듯 우수수 검은 전사들이 땅에 쓰러졌다.

푸르던 초원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수천, 수만 명의 전사들이 죽어갔다. 대승을 거둔 백인들은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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