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54. 거리의 투명 인간들

아프리카 도시의 거리를 다니면 아이들이 달라붙어 손을 내민다.

본래 색이 뭔지 모를 만큼 허름한 흙빛 누더기를 걸친 그 부랑아들은 부모의 보살핌 없이 거리에서 살아간다.

그 녀석들은 눈이 쭉 째진 못생긴 외국인이 신기한 듯 구경하며 구걸을 한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아이들과 나는 좀 다른 부분이 있다.

나에게는 10개의 손가락이 있다. 발가락도 10개가 있다. 합쳐서 20개가 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각각 다른 수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갖고 있다.

거리의 꼬마들은 변변한 신발 하나 없이, 머리 대고 누울 잠자리 없이 아무 데나 뒹굴며 산다.

그런데 그 ‘거리’라는 곳은 폭신한 잔디 길이 아니다. 가시나무와 깨진 유리, 쇳조각이 널린 삭막한 고행길이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새로 나온 장난감을 사달라고 칭얼댈 때, 동년배 아프리카 거리의 아이들은 까맣게 썩어버린 발가락 마디를 뜯어내며 눈물을 삼킨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양손의 손가락 10개는 물론이고 어깨 아래로부터 양팔이 절단된 대여섯 살배기 어린애가 거리에 있는 걸 보았다.

눈이 완전히 풀린 채 상점 통유리 앞에 널브러져 있던 그 아이는 반 뼘 정도 남은 짧은 토막 팔과 턱을 사용해 라이터를 입안에 집어넣고 가스를 흡입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를 쳐다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갑자기 울분이 터졌다.

나는 길가의 어른들에게 왜 아이가 가스 마시는 것을 나무라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내가 라이터를 뺏더라도 저 아이는 곧 똑같은 일을 반복할 거예요. 저 아이들은 구걸을 해서 돈을 받으면 음식 대신 마약이나 가스를 삽니다. 그렇다고 저 아이를 우리 집에 데려갈 수도 없어요. 이봐요, 외국인 양반. 대체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예요? 나도 저란 아이를 보면 가슴이 아파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모두 그걸 알고 있어요.”

아이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할 기회도 없이 강요되는 혹독한 삶.

비어있는 그들의 손가락, 발가락 자리를 누가 채워줄 수 있을까? 그들 중 몇 명이나 연필을 잡고 공부를 해 볼 수 있을까?

성인이 될 때까지 생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그들이 범죄와 성매매, 마약의 유혹을 피해 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부유하며 나의 뇌 속을 헤집어 놓았지만 괴로움만 더해갈 뿐 시원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저작권자 © 우리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