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바라보는 함평 김영모씨
매일 같이 하루 3번 어머니집
방문해 식사, 건강, 안부 챙겨
효행 공무원으로 표창장 받아
“어머니 항상 건강하셨으면”

함평군 학교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김영모(57) 팀장이 약 30여년 동안 어머니를 모셔오는 등 묵묵히 효심을 이어오고 있다.

‘엄마!’

작년과 올해는 또 다르다. 날이 다르게 귀가 잘 안 들리시는 모친 나갑임(97)씨를 위해 목소리에 힘을 주어 힘껏 부른다.

매일 하루 3번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새벽 출근시, 낮에 시간 날 때, 퇴근 시. 대문에서부터 방 안의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면 마음에 안도감부터 올라온다.

최근 코로나 19로 마을 경로당을 가지 못해 집에만 계시는 어머니의 안부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게 TV 소리이기 때문.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느슨해진 요즘 지극한 효심으로 고령의 모친을 극진히 모시며 경로효친 사상을 실천하고 있는 이가 있다.

함평군청 학교면 주민복지팀장으로 근무 중인 김영모(57)씨이다.

김 씨는 1996년도 결혼한 후부터 어머니를 모셔왔다. 지금은 남편을 먼저 여인 큰 누님이 어머니와 함께 계시기에 큰 걱정은 덜었으나 그래도 어머니 얼굴을 매일 뵙고 안부를 살펴야 마음이 놓인다.

“우리 어머니께서 연세에 비해 건강하셔요. 혈압약도 1개만 드시고 식사도 가리지 않고 다 잘 드실 정도라 100세도 훨씬 넘게 장수하실거에요. 지금도 핸드폰으로 연락도 직접 해주시고 기억력도 아주 좋아요.”

김 씨는 매일 어머니의 집을 들러 바닥은 차지는 않은지, 편찮은 곳은 없는지, 식사는 챙겨 드시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

자식은 부모님하는 것을 보고 배운다는 말처럼 김 씨는 어렸을 적 장손이셨던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계신 할머니를 모시는 것을 보고 자랐다.

또 3남 3녀 중 철없는 막내로 자라 고교시절 광주에서 객지 생활을 했던 김 씨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도 어딜 가든지 손에 돈을 꼭 쥐어주던 부모님의 사랑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자식 뒷바라지하기 위해 평생을 고되게 살아온 부모님이셨기 때문에 늘 고마웠다.

“형, 누님 키우는 것 보다 너 키우는 게 돈이 더 든다고 말씀하셨지만 객지 사는 아들이 걱정되셨는지 그렇게 마음을 쏟아주셨어요. 그런데 아버님과 큰 형님이 돌아가시고 어려웠어요. 그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죠.”

항상 건강하실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2006년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의지했던 큰 형님마저 운동중 갑작스레 쓰러져 1년간 뇌사상태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이들의 빈자리에 방황도 하면서 치유의 시간도 오래 걸렸다. 특히 목소리나 생김새도 닮았던 큰 형님을 생각할 때면 사무치는 그리움에 마음이 적적할 때가 많았다.

김 씨는 홀로 쓸쓸하실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머니 집을 방문했다. 늘 자식들 사진도 보여주고, 말동무도 됐다가 아픈 곳은 없는지 집에 필요한 것은 없는 지 살펴보고 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김 씨의 묵묵한 효심이 지역에도 울렸을까. 함평경찰서, 함평군청 등에서 효행 공무원으로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주변에서 제 실정을 들으신 분들께서 함께 도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자식이면 당연히 할 도리인데 감사하죠.”

김 씨의 큰 바람은 앞으로도 어머니가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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