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마이삭’이 할퀴고 간 자리들이 처참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방파제 뒤 안전지대에 정박해 둔 어선들은 뒤집혀 배를 드러내고, 곳곳의 교량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무엇보다 위험천만한 사건이 터졌는데 태풍이 부산을 통과하던 3일 새벽 기장군의 원전 4기가 일제히 셧다운 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3일 새벽, 고리3·4호기(가압경수로형, 95만kW급), 신고리1·2호기(가압경수로형, 100만kW급)의 원자로가 정지(신고리1호기 00시 59분, 신고리2호기 01시 12분, 고리3호기 02시 53분, 고리4호기 03시 01분)됐다”고 밝혔다.
태풍 피해로 인해 원전 4기가 동시에 멈춰 선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인데다가 이 과정에서 비상발전기까지 가동된 것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고리원전 올 스톱은 태풍으로 인한 소외 전력계통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고리원전 관계자는 “이번 원자로 정지로 인한 환경으로의 방사선 영향은 없으며, 정지된 원자로는 안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조속한 점검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안전하게 원전을 재가동할 방침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환경운동연합은 3일 성명을 통해 “한국수력원자력측은 방사선 누출 등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문제는 태풍으로 인해 다수 호기가 밀집돼 있는 핵발전소 부지 내 모든 발전소가 셧다운 될 수 있는 위험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면서 “다행히 이번에는 전력 사용량이 많지 않은 새벽 시간에 발생해서 문제가 없었지만 대규모 정전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번 원전 사고에서는 비상발전기가 자동 가동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비상 디젤발전기는 원전이 비정상으로 정지되고 자체 전원이 차단될 때 자동으로 발전을 하면서 원자로에 전원을 공급하는 장치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오버랩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 지진에 의한 쓰나미가 발생해 원전에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원전이 멈춰 섰고, 전력 공급까지 중단되면서 발생한 사고이다.
이때 비상발전기가 가동하면서 원자로를 정상적으로 식혀야 하는데 비상발전기까지 가동이 어려워지면서 원자로를 식히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발전소 폭발까지 이른 사건이다. 이번 고리원전 사고가 무서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고리원전의 경우 4550MW의 전력량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약 5% 해당하는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가 새벽이 아니고 전력 소비가 많은 시간에 발생했다면 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연재해가 원전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태풍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가 무서운 이유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는 데 있겠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가 지나갔을 때도 고리 1~4호기와 월성 2호기가 정지되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2003년 매미가 원전에 큰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한수원에서는 태풍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 ‘마이삭’ 태풍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고리 원전을 모조리 가동 중단 시켜버렸다. 외부 전력까지 차단하면서 비상발전기를 가동시켜야만 하도록.
원전 관계자들은 이번 고리원전 중단에서 드러난 것처럼 원전의 집중화는 위험천만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장소에 원전을 4기씩, 영광처럼 원전 6기를 한 장소에서 가동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분산 배치를 하자는 것인데. 원전의 특성상 서해안은 수심이 낮아 원전에는 맞지 않는 지형이다. 그러면 동해안에 건설할 수밖에 없는데 이론상으로만 봐도 동해한 속초부터 부산까지 모든 곳에 원전을 만들어도 어려운 부분이다.
원전은 우리나라의 지형상 분산해 건설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힘’ 의원들이 태풍과 집중호우로 인해 일부 태양광시설이 무너진 것을 두고 정부를 집중 공격했다.
원전을 포기하고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펴면서 무리하게 태양광 정책을 폈고, 일부 피해를 침소봉대하면서 정부를 공격했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태양광 단지가 일부 무너진 것과 원전 4기가 동시에 셧다운 되고 비상발전기까지 가동되는 것 중 어떤 것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