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20년, 서울에서 50년을 살다가 영광에 내려와 백옥마을에 정착한 것이 어언 3년이 되어간다.

어떤 연고로 백옥마을에 왔느냐고 묻기도 하고 집 아이들은 좀 더 경관 좋은 데는 없었느냐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지만 골라서 살 만큼 자금에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영광에서 나오는 지방 신문의 광고를 보고 고른 것이다.

이 지역에서 발상한 원불교와 인연이 되어 내려 온 것이 노후를 시골에서 보내는 것도 좋겠다 싶어 눌러 앉기로 한 것이다. 아파트도 생각해 봤지만 성가(成家) 이후 쌓인 세간들을 한꺼번에 버리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묵은 세간 쑤셔 넣을 공간이 많은 단독주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보니 차로 5분 거리인 법성의 농협, 마트, 우체국 등 편의시설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영광도 겨우 15분 거리이다. 무엇보다 나를 푸근하게 하는 것은 이웃이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라고 했는데 또래의 남녀노인들이 많아 옛날 내가 자랐던 마을과 같이 인정스럽다.

집성촌(금성 라씨)이어서 그런지 모두가 큰집이고 작은집이고 당숙모고 조카다. 5년여를 살아도 사람 사는 동네에 흔히 있을 법한 큰 소리로 다투거나 술 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광경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농사를 짓는데 장비를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만 다를 뿐, 날이 밝으면 논이나 밭에 나가 일하고 어둑해지면 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10여 호 남짓한 전형적인 산골 농촌마을이다.

봄에는 운동 겸 뒷산에 올라 고사리와 두릅을 따고 여름에는 산딸기와 산오디를 따먹는다. 동네 분들은 농사일에 바빠서 산에 갈 틈이 없으므로 온통 내 차지다. 밭에서 만난 이웃들이 다투어 챙겨주는 푸성귀로 반찬을 만들어 먹고 산다. 지상낙원이 이런 것이리라.

새삼 영광에 온 것을, 공기 맑고 인심 좋은 이곳 백옥마을에 정착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긴다. 서울에는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솟아 난리들인데 나같이 돈 벌 일도, 자식 키울 일도 없는 사람은 굳이 그 복잡한 데서 북적거리지 말고 정리하여 그 절반만 가지고 내려와도 노후를 편히 살 텐데 하는 오지랖 넓은 투정을 해본다.

서울이 먼 곳 같지만 대강은 손 전화로 소통이 가능하고 첫차와 막차를 이용하면 점심, 저녁약속까지 보고 올 수 있다. 붐비는 도회에 부대끼면서 우리 집 아파트가 몇 억이 나간다더라고 으스대면 뭐할 건가. 조금만 눈 돌리면 백옥마을 같은 낙원이 도처에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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