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 <아프리카, 좋으니까>
송태진 케냐 방송국 GBS 제작팀장

30.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하)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외국인을 골탕 먹이는 아프리카인들. 종잡을 수 없는 그들과 함께 일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답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세계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정답, 바로 신뢰와 진실성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외국인을 괴롭히면서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핀다. 이 외국인이 진정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그의 회사는 아프리카에 진짜로 투자할 의지가 있는지 따지고 확인한다.

우리가 볼 때는 아프리카인들의 고까운 거짓말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외국인에게 물리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물론 뇌물을 요구하는 부패 공직자를 변호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거짓말만 보고 속 터져야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신뢰를 쌓는 과정 없이 논의되는 모든 약속들은 의미가 없다.

아프리카에 득이 되는 사업이라는 진정성이 보인다면 아프리카인들은 조금씩 외국인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만약 아프리카인이 모든 테스트를 거치고 이 외국인을 믿을 수 있는 친구라고 판단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일처럼 온 마음으로 도와준다.

초창기 회의에서 말했던 뜬구름 잡는 이야기 대신 실무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대로 논의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아프리카인들이 당신을 믿기 전까지 당신이 먼저 신뢰와 진실성을 보여줘야 한다. 내가 준비하는 계획이 진심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믿을 수 있도록 신뢰를 쌓아야 한다.

어쭙잖은 눈속임이나 돌려 말하기로 상황을 넘어보려는 시도는 아프리카인들의 길고 긴 테스트 기간에 죄다 간파 당한다. 아무리 뇌물을 많이 써도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절대 도움을 얻을 수 없다.

뇌물과 비밀스런 커넥션보다 장기적인 진실성과 확실한 계획이 더 잘 먹힐 수 있다. 그들도 자신들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을 알기에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존경스럽게 생각한다.

한국 NGO 국제청소년연합은 케냐 경찰청 개혁부와 함께 케냐 경찰인성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케냐 경찰청 조지 키노티 부청장에게 왜 한국 NGO와 일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매사에 포기하지 않는 부분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사람들이 가진 훌륭한 정신을 우리도 이식 받고 싶어 함께 일하게 됐다”고 답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퍼져있는 불신 풍조는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거짓이 너무 많기에 거짓을 이용해 참과 거짓을 가려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들은 한번 물려본 경험이 있기에 매사에 조심스럽다. 거창한 계획과 검은 돈 대신 그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신뢰가 없는 상태로 회의에서 주고받은 말들은 ‘언제 밥 한번 먹자’와 비슷한, 공허한 논의 밖에 안된다. 한국과 아프리카가 건전한 신뢰 위에 토대를 쌓는다면 장기적으로 더 훌륭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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