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회, 토종콩으로 메주 담궈
마을회관 짓고자 메주 사업 시작
99년부터 나비축제서 봉사활동해

29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

[전통방식에서 현대식으로]지난달 21일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에 위치한 입석마을에서 구수한 냄새가 코끝에 풍겼다. 선돌이 있어 입석이라고 불리는 입석마을은 나산면의 주산인 천주봉의 산자락 아래 아담히 자리하고 있으며 약 5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 이 마을에는 61세대, 119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한행(69) 이장이 입석마을회관에서 나와 기자를 반갑게 맞이 해주셨다. 이 이장을 따라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풍기는 구수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입석마을 부녀회 회원들이 직접 재배한 토종 콩으로 만든 메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지난해 11월에 만들어진 메주는 올해 1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해 현재 메주 판매가 한창이다. 이곳의 메주는 원래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콩을 삶는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져왔지만 삼 년 전 보조사업 지원을 받아 현대식 시설로 교체했다.

이영호(59)씨는 “주민들이 땔감을 경운기로 가서 실어오다가 다칠 뻔한 일도 많았어요. 가마솥에 불을 피워서 하다보니까 위험성도 있어 삼년 전에 가스시설로 바꾸고, 가마솥 대신에 대형 스댕 솥으로 바꿨죠”라고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김재일(78) 노인회장은 “그 전에 재래식으로 만들 때는 한 달 걸렸는디, 지금은 기계로 하니까 며칠 안 걸리더라고. 지금은 메주도 그 전 같이 많이 안 하고 또 그렇게 하지도 못해”라고 말했다.

노영숙(54) 총무는 “부녀회원들이 다 연로하시고 전통방식으로 하면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지금은 메주 쑤기가 훨씬 수월하죠”라고 말했다. 그동안 부녀회원 15명이 메주를 30kg짜리 콩 200가마로 만들었지만 현재는 부녀회원 5명이 3분의 1도 되지 않는 60가마로 메주를 만들고 있다. 박금례(65) 어르신은 “이제는 나이가 많이 먹어서 부녀회원들이 다 나가블고 다섯 밖에 안해”라고 말했다.

[‘회관이나 하나 짓자’… 메주 사업 시작]입석마을이 메주를 시작한 데에는 사연이 있다. 70년대 초부터 지원된 새마을사업이 같은 구역인 사산마을에는 지원됐지만 입석마을은 시멘트 한 포 제대로 못 가져온 시절을 보냈다. 공공시설인 회관이나 경로당이 사산마을에는 지어져 있었지만 입석마을에는 없어 저녁에 회의를 할 때면 사산마을까지 가야 됐다.

그렇게 마을사람들은 회관을 짓기 위해 메주를 시작하게 됐다. 이영호(59)씨는 “메주를 시작한지가 한 23년 정도 됐겠네요. ‘회관이 없다. 회관이나 하나 짓자’고 해서 메주를 만들기 시작했죠”라며 “저는 길을 조금 알려드리고 고생은 이 아짐들이 엄청 많이 했죠”라고 말했다. 메주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가마솥과 장독들을 손수 구입해 장작을 떼 처마 밑에 메주를 달았지만 마음처럼 발효가 잘 되지 않았다. 습도조절이 맞지 않아 곰팡이가 너무 많이 피어 강아지 털을 연상케 하는 메주를 만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곰팡이가 너무 많이 피어 까매진 메주를 버리기 아까워 깨끗이 씻어 장을 담은 것이 지금의 장독대가 됐다. 마을회관 조차 없던 작은 마을에서 메주를 시작하게 되면서 땅을 사고 마을회관 건립도 하며 주민들 간의 끈끈한 정도 생겼다. 박금례(65) 어르신은 “우리 마을은 진짜 아무것도 없었죠. 메주를 쑨 지 이십년이 넘었어도 메주를 쑤면서 싸움 한 적도 없고 이 날 평생 재밌게 살아요”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밤중에도 메주를 쒀가며 마을회관을 짓자는 일념 하나로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해왔다. 박금례(65) “우리 마을은 고생했어도 보람 있이 했어. 누가 돈 얼마씩 먹지도 않고, 마을에서 뭐하면 같이 하고 그렇게 해. 돈 많이 벌려고도 않고”라고 말했다. 혼자 있든, 둘이 있든, 셋이 있든 뭐를 한다고 하면 모두 밖으로 나와 공동으로 하는 입석마을주민들은 지금 현재까지도 부녀회 돈으로 마을 운영을 해나가고 있다. 부녀회 돈이 곧 마을 공동회비인 셈이다.

노영숙(54) 총무는 “우리 동네 땅이 없어서 땅 마련하고 한 십여 년간을 개인한테 인건비도 못 주면서 마을자금으로 썼죠”라고 말했다. 장수마을로 지정된 입석마을은 다른 장수마을들과 달리 노인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보다 소득과 집결이 되다보니 돈을 받아서 마을에 많이 쓰여졌다. 이영호(59)씨는 “건강장수마을이 골병 들어버렸어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이 양반은 날아 다녔는데 지금은 겨우 걸어 다녀요 (웃음)”라고 말했다. [부지런한 입석마을주민들]입석마을은 ‘함평나비대축제’가 열린 지난 1999년부터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활동을 이어와 모르는 사람들은 사산마을보다 입석마을이 더 큰 마을인 줄 안다.

하지만 사실상 사산마을의 반 밖에 되지 않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이영호(59)씨는 “우리 마을 농토가 그렇게 넓지는 않은데 마을 분들이 부지런해요. 그래서 양파도 이 근방에서 가장 많이 하면서도 더 부지런하게 활동을 하죠”라고 말했다.

김재일(78) 노인회장은 “우리 마을이 제일 많이 봉사활동을 나갔어. 팥죽장사도 하고 별 장사를 다했지. 지금은 장사꾼들이 자리를 다 가져가 버려서 장사를 하고 싶어도 못하지”라고 말했다.

메주를 만드는데 일등공신이었던 가마솥 또한 축제에 출장을 많이 나갔다. 현재는 더 큰 솥이 생겨 마을에 머물러 있지만 한 때 여러 지역축제에 출장을 나가 큰 도움을 주곤 했었다. 아무것도 없던 입석마을이 메주로 인해 행복을 풍기는 지금의 입석마을을 만들었다.

저작권자 © 우리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