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시아인의 환상

▲팔씨름을 마친 뒤 찍은 사진.

아프리카 사람은 아시아 사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흔히 싸움을 잘할 거라는 환상. 아마도 아프리카에 방영된 중국의 쿵푸 영화가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지부 밖을 돌아다니다 보면 항상 “헤이, 차이나!”라는 말이 흔히 들렸다. 처음에 그 말에 화도 나고 한국인인데 왜 중국인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짜증도 났다.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들 눈에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다 똑같아 보인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 또한 보츠와나 사람이나 인근에 있는 다른 아프리카 사람이나 똑같아 보였다. 그들도 잘 살지 못하고 열악한 지역의 아프리카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정말 싫어했다. 한국인이 중국인, 일본인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과 같은가 보다.

한 번은 현지언니 씨투냐에게 “차이나 소리 좀 그만 듣고 싶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씨투냐는 “미영, 그건 어쩔 수 없어. 앞으로 한국에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들어야 될 소리야”라며 “‘차이나’ 소리가 들리면 쿵푸하는 모습을 보여줘. 그러면 다 겁을 먹고 도망갈거야”라고 말했다. 씨투냐의 조언대로 ‘차이나’ 소리가 들렸을 때 어설픈 쿵푸 자세를 취해봤다. 다들 움찔하며 겁을 먹었다. 그날이후로 씨투냐는 필자에게 쿵푸를 배우고 싶다며 가르쳐달라고 했다. 쿵푸의 ‘쿵’자도 모르는 필자는 단지 흉내만 냈을 뿐인데 가르쳐달라고 다가오는 씨투냐가 참 난감했다.

이후, 휴식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씨투냐가 쿵푸를 하려면 팔에 힘을 길러야 될 것 같다며 필자에게 팔씨름을 제안했다. 한 번도 팔씨름에서 이겨 본적이 없는 필자는 자신이 없었지만 씨투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거만한 표정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팔씨름을 하기 전 몸을 푼다며 요란을 떠는 씨투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한 단원의 심판 아래 팔씨름이 진행됐다. 결과는 필자의 승리였다. 씨투냐는 “미영, 나는 오른손보다 왼손이 더 쎄. 왼손으로 다시 해보자”라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다시 팔씨름이 시작됐지만 결과는 역시나 필자의 승리였다. 씨투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통쾌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씨투냐는 더 이상 필자를 힘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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