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마을 사람들. 뒷줄 왼쪽 첫번째가 김사순 이장님

전주이씨 종가 이규헌 가옥당산나무 전설 그대로 따라민요로 대상 다수 수상이장, 마을 활성화사업 힘써

이규옥 가옥 내 정원
따스한 햇빛과 세찬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지난 27일. 묘량면 영양리에 위치한 당산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아기자기한 꽃 화단이 양쪽으로 마을 안까지 이어져 있다. 꽃길만 걷자는 말이 이곳에 어울릴 정도다.

현재 32세대 60명이 거주하는 당산마을은 태종의 조카 양도공 이천우의 증손 이효상이 이곳에 입주하면서 전주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게 됐다.

원래 수원 백씨들이 살아 산양이라 불리던 마을을 옛 고향 당산동을 그리워 한 이효상이 마을 이름을 당산이라 했던 설과 당산나무가 많이 있어 당산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다.

마을 회관을 지나면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22호 이규헌 가옥이 보인다.

약 500년간 20대 손이 살고있는 전주이씨 양도공파의 종가인 이 곳은 정문, 사랑채,안채 그리고 사당으로 구성돼있다.

가옥에 방문하니 현재 주인이 일이 있어 집을 비운상태다. 사랑채 앞마루에 느긋하게 쉬고 있는 4마리의 고양이가 낯선 이의 방문이 놀랍지 않은 듯 하다.

입구 옆 물레방아가 부지런하 돌아가는 정원은 꽃과 잘 가꿔진 묘목이 어우러져 멋스럽다.

마을 입구 꽃길
가옥을 나와 마을 회관에 들어서니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앉아 커피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주민들은 하나 둘 씩 이야기를 꺼낸다.

“당산나무 앞으로 못 지나갔제”마을이름처럼 마을이 당산과 관련이 깊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 마을도 당산제 못 지낸지한 20년 됐제. 젊은 사람이 없응께 하고 싶어도 못하제” 박정임(80)씨가 말했다.

음력 정월대보름이면 마을에서 돈을 모아 제도 지내고 마을 주민들이 직접 당산 풍악도 울렸다.이어 “마을에 당산 나무 큰게 있었는 데 죽은지 9년 쯤 됐을까.

예전엔 사람이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가는데 당산나무 지날 땐 그 앞으로 못 지나갔제. 무조건 당산 주위를 돌아서 갔어야 했어”라고 정순희(81)씨가 설명했다.

당산나무에 얽힌 설화 때문인지 마을 주민들은 혹여나 부정탈까 걱정돼 마을 전통을 그대로 지켜왔다.

“언제 한번은 당산나무가 자꾸 죽어가서 마을 사람이 수액, 약, 막걸리. 당산 살릴라고 좋다는 건 다하고 있었어.

근데 어디서 무당이 찾아와서는 당산나무 죽어가는 건 어째 알았는 지 몇날 며칠을 굿을 하더라고. 근데 얼마 못가서 당산이 죽어버렸제” 이현택(81)씨가 말했다.

몇 백년을 살아온 거대한 당산나무를 살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죽어버린 당산나무에 대해 무척 아쉬워했다.

수준급 민요 실력…마을 이장의 노력마을 분들은 어떻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연임(73)어르신은 “우리 마을 사람들은 성품이 얼마나 고운지 몰라. 다른 사람 아파서 일 못하거나 어려운 일 당하면 다 같이 도와주제. 자기 일 하는 것도 바쁜데 서로 와서 논 일도 봐주고, 돈 모아서 같이 도와주고, 옛날부터 그랬어”라며 칭찬 일색이다.

1998년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됀 마을인 만큼 그간 마을에 싸움도 없고 서로 품어주고 도우며 살아왔다.

“마을 사람들끼리 화합이 참 좋아. 뭐 하자고 하면 다들 자기 일처럼 모여주제. 그래서 우리끼리 민요도 연습해서 대회나가서 상도 많이 탔제. 다들 자기일 다 끝내고 저녁 늦게 연습에는 꼭 참석했다니까. 밤 12시 넘어서까지도 연습하고 모였제”라고 노인회장 이남연(82)씨가 말했다.

보건복지부 지역사회서비스투자사업으로 판소리건강 100세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부터 매년 남도어르신 판소리민요 한마당축제, 법성마을 민요 대회 장흥 의학박람회 등 참가해 대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 다른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박다희 강사님말고도 다른 강사님이 우리 마을만 오면 안 갈라고 자꾸 그래요. 가르쳐주면 너무 잘 따라주니께 교육이 끝나도 자꾸 우리랑 있을라고 그런다니까요” 마을이장 김사순(63)씨는 회관 안 걸려있는 사진과 상장들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화합이 잘 돼는 마을 주민 분위기 때문인지 다른 마을에 비해 잘 따라주는 어르신들의 매력에 빠진 강사들이 교육이 끝나도 계속 마을을 찾는다고. 주민들은 대회 이후 여러 요양원을 방문해 민요 공연을 하는 등의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리 마을이장님 아니였음 이런거 못했제. 다 이장님 아이디어라니께. 마을 입구에 있는 꽃도 다 이장님이 추진해서 저렇게 된거제. 이장님이 자기 집보다 마을 일에 그렇게 힘을 쓴당께.

얼마나 고마워”라고 정순희씨가 말했다. 이장을 맡았던 남편을 이어 2009년부터 이장직을 맡아온 마을이장 김사순씨는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는 마을을 활성화시키고자 갖은 노력을 했다.

“마을 분들이 이렇게 다 따라주니까 이런 저런 것도 다하죠. 젊은 사람이 없어 걱정이지만 앞으로도 마을을 활성화 시키기위해 다양하게 힘써볼 생각이에요”라고 김사순씨가 말했다.

민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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