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육중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린다. 공중으로 붕 뜨는 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2012년 1월 그렇게 대한민국을 떠났다. 가슴 설레는 유럽여행이 아니다.

1년간의 해외 자원 봉사를 위한 출국이었다. 장소는 서부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자원봉사를 떠나기 전까지도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어떻게 생긴 곳인지 조차도 몰랐던 나라다.

그 낯선 나라 아프리카를 찾아 지금 떠나는 중이다. 비행시간만 20시간이 넘는다. 도착할 때쯤이면 피곤에 지쳐 늘어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꽃다운 대학생시절, 필자는 국제청소년연합(IYF)의 해외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봉사를 가기 전 워크샵과 대륙별 훈련을 받은 뒤 단원 2명과 함께 서부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잘 다녀와" 공항에서 엄마에게 다녀오겠다며 작별인사를 했더니 돌아온 답변이다.

다른 부모 같았으면 눈물바램을 하며 울며불며 몸성히 다녀오라는 말을 수없이 했을 법 한데. 나를 키워준 엄마는 달랐다.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오면 아마도 네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부럽다” 그 엄마를 닮아서일까. 필자 역시 무덤덤했다.

해외자원봉사를 떠난다는 것에 대해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난 꿈을 갖고 떠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불과 19년 살아온 인생이지만 매일 같은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내 고향 장성군 북이면. 부모님은 평범하게 농사지으며 산다. 비록 시골에서 살고 있지만 두 분은 여느 잉꼬부부처럼 다정한 편이다.

그런 부모 밑에서 나와 내 남동생은 자연스럽게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부모님은 인문계 고등학교 보다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추천했다.

광주나 장성의 인문계 고교 진학을 꿈꿨던 나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았다. 결국 어찌어찌 해서 전주에 있는 특성화고교인 링컨하우스스쿨에 진학해 3년을 마쳤다.

일반 고교와는 전혀 다른 군대 훈련소와 같은 교육과정 탓에 적응이 힘들었지만 꿋꿋이 버텨냈다.

어느 날 집에 오니 남동생이 무척이나 놀란 듯 한마디 했다. “누나는 그 학교에 가더니 중학교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 그 때문이었을까.

동생도 3년 후 내 후배가 됐고 졸업했다. 지금은 러시아에서 1년간 막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와 전국을 순회하며 귀국발표회를 치르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곧 아프리카 가나 도착한다는 기내방송이 나온다. 기나긴 시간을 달려 마침내 지구 반대편 열대의 나라에 첫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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